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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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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울 수 있나?
작성자 gana
작성일자 2023-04-07
사람이 죽으면 “황망하다” “허망하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우선, 나는 이 말이 아주 싫다. 말하는 사람 쪽에서는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세련된 배려라고 생각한다. 유가족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지만. 그가 사회적 신분이 좀 되는 사람이라면, 더 살아 사회에 기여하지 못한 것이 더 황망하고 허망하다고 한다. 이는 고인을 보는 내 감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는 빈소에서는 그 말 하고, 빈소를 나가면 클럽에 가서 춤을 출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 슬퍼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마음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자기 슬픔으로, 자기가 슬퍼하는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아버지는 아니어도, 엄마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엄마는 자식을 10개월 품어서 자식과 동일시돼 있다. 자식을 위한 슬픔이 아니라, 동일시 대상을 떠나보낸 자기 슬픔 때문에 슬픈 것이다.

감정을 떼어내고 분석하면, 이것은 냉정한 사실이다. 심지어 자식이 죽어 질병과 고통이 없는 좋은 곳에 갔다고 믿는 사람도 슬퍼한다. 아직도 남은 고통을 더 치러야 하는 산자를 위해서, 죽은 사람이 울어줘야 하는 것이 맞다. 다 자기 슬픔으로 우는 것이다.

황망하다, 허망하다, 그는 황망해라 하지도 않고 허망해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산 사람은 산다.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을 살다가 자기 때가 되면 떠난다. 이는 정한 이치이다. 이런 대자연의 섭리를 허망하고 황망하게 바라본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사별 슬픔으로 괴로워하던 분들의 상담을 마치면, 그분들은 공통으로 깨닫는다. “내 슬픔이었구나.” 중장기 상담을 마치면. “죽음은 이런 것이구나.”

박성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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